판빙빙과 퀴어영화 <그린나이트>로 베를린 초청 받은 이주영의 행보 || 코스모폴리탄코리아 (COSMOPOLITAN KORE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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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빙빙과 퀴어영화 <그린나이트>로 베를린 초청 받은 이주영의 행보

배우 이주영은 자유롭다. 퀴어 영화를 촬영하는 것도, 트랜스젠더로 분하는 것도, 한국 프로 야구의 유일한 여자 선수가 되는 것도 그에겐 자연스러운 일이다. 지금은 2023년이고, 이주영은 이주영이니까.

COSMOPOLITAN BY COSMOPOLITAN 2023.03.27
 
베를린은 어땠나요?
아, 진짜 너무 좋았어요. 내내 칙칙하고 흐리고 비도 왔는데, 그 무드 자체가 베를린이라는 공간과 너무 잘 어울리는 거예요. 길거리를 다니는 사람들도 멋있고 자유분방하고 예술적이고 독특해서 사람 구경도 재미있었죠. 칸영화제는 정말 축제 같은 느낌이었다면 베를린국제영화제는 차분하지만 개성 있는 느낌이에요.
 
영화 〈그린 나이트〉는 판빙빙이 직접 편지를 써서 배우 이주영을 섭외했다고요. 그 편지를 받았을 때 마음이 어땠나요?
저에 대한 사전 조사를 정말 많이 하셨더라고요. 지금까지 어떤 캐릭터들을 연기했는지부터, 예능 〈런닝맨〉에 출연해 환하게 웃는 모습까지 보고 제가 캐릭터에 잘 맞겠다고 생각하셨대요. “이 역할을 위해 많은 배우를 찾아봤지만 주영 씨를 보고 나서부터는 꼭 주영 씨가 해줘야겠다고 생각했다”면서요. 사실 시나리오를 받고서는 결심이 필요했거든요. 수위가 센 장면들이 있었고 자신이 없었죠. 하지만 판빙빙 언니의 편지를 읽고, 한슈아이 감독님이 어쩌다 이런 시나리오를 쓰게 됐는지 이야기를 듣고, ‘이 사람들과 같이 영화를 만들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재킷, 브라톱, 레이어드한 포켓 스커트, 스커트, 브리프 모두 가격미정 미우미우. 이어 커프 15만8천원, 엄지에 낀 반지 26만원 모두 트렌카디즘. 브레이슬릿 70만원 스와로브스키. 중지에 낀 반지 가격미정 센티멍. 메리제인 슈즈 가격미정 프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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촬영은 어떻게 진행됐나요?
낯선 현장이었죠. 중국어도 해야 했고, 중국 스태프들도 많았고. 항상 통역가와 함께 소통해야 해서 제약이 많았는데, 나중엔 언어를 통하지 않더라도 판빙빙 언니 눈을 보면서 느껴지는 감정이 있더라고요. 공간의 분위기도 도와줬고요. 어릴 때 제가 좋아했던 영화 〈화양연화〉 같은 색감과 조명을 써서 그 순간에 온전히 몰입할 수 있었죠. 굉장히 비밀스럽게 촬영한 작품이기도 해요. 보통 작품을 찍으면 기사도 내고 ‘떡밥’을 뿌리는데, 저희는 사람 한 명 안 다니는 곳에서 극비로 촬영했어요.
 
‘초록 머리 여자’를 연기한 건 어땠어요?
감독님은 “스스로 소동물인 것처럼 생각하고 연기를 해줬으면 좋겠다”라고 디렉션을 주셨어요. 동물들은 본능적이고 직관적이잖아요. 그냥 자기가 눕고 싶으면 눕고, 자고 싶으면 자고, 웃고 싶으면 웃고..., 사실 카메라 앞에서 자유롭기란 쉽지 않지만, 내가 어떤 돌발적인 행동을 해도 카메라가 날 따라와줄 수 있다는 믿음을 가지고 임했어요. 실제로 모든 촬영이 다 핸드헬드로 이뤄졌고요. 픽스된 프레임 안에서 움직임과 동선을 정해두지 않았고, 약속된 대사와 큰 동선 외에 모든 건 자유로웠어요.
 
콘티는 있었겠죠?
없었어요. 우리 모두의 약속은 ‘원하는 대로 움직이고 원하는 대로 찍자’는 것. 사실 그게 더 어렵지만요.(웃음) 컷을 많이 나누지 않아 촬영이 오래 걸리긴 했지만, 그 안에서 감독님도 판빙빙 언니도 저도 모두가 그 영화적 순간을 믿는 사람들이었던 것 같아요.
 
크롭트 셔츠 26만원 YCH. 목걸이 68만원 스와로브스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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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도 언어도 다르고, 나이 차이도 꽤 있는 판빙빙과의 합은 어땠어요? 판빙빙은 당신에게 “개인적으로 만났어도 사랑에 빠졌을 사람”이라고 말하기도 했어요.
말로 설명하기 힘든데요, 저도 베를린에서 프리미어 상영 때 처음 이 영화를 봤는데 ‘내가 〈그린 나이트〉란 영화를 찍었던 순간만큼은 ‘하빙’이라는 캐릭터를 진심으로 사랑했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또 신기한 경험은, 보통은 촬영이 끝나도 배역을 벗은 채로 밖에서 만날 수도 있는 거잖아요. 근데 판빙빙 언니는 촬영 바로 다음 날부터 만날 수 없는 사람이 됐어요. 메시지는 할 수 있지만 볼 수는 없었죠. 한 1~2주 동안은 기분이 이상했어요. 진짜 ‘하빙’을 잃어버린 것처럼. 이번 베를린국제영화제에서 오랜만에 만났는데, 만나자마자 포옹했어요. 서로 ‘걸프렌드’라고 하면서.(웃음)
 
건조한 연상 여성과 자유분방한 연하의 여성. 벌써 관계성 맛집입니다.
초반부 하빙의 캐릭터는 정제돼 있어요. 자신의 틀에서 벗어나지 않을 것 같은 사람이 제 캐릭터를 만나고 ‘어? 얘가 계속 나를 건드리고 하나씩 꺼내놓네?’라는 생각을 하게 되는. 억압되고 억눌린 하빙의 마음을 계속 건드려주는 캐릭터였어요. 재미있겠죠?(웃음)
 
점퍼, 보디슈트, 가죽 쇼츠 모두 가격미정 페라가모. 니하이 부츠 가격미정 크리스찬 루부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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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상 어때요?
실제로요? 저는 상관없어요. 생각해보니 한 번도 연하를 만나본 적이 없네요. 저는 나이 차 상관하지 않아요.
 
아이유, 배두나, 박은빈 등 같이 연기했던 배우들과는 반드시 친해지잖아요. 비결이 있나요?
제가 그들을 정말 좋아하고, 그들이 저를 좋아해주길 바라요. 사실 작품 속에서 제가 기댈 수 있는 건 상대 배우밖에 없다고 생각하거든요. 의지하는 마음이 있으니 현장 밖에서도 마음이 가고, 사적으로 친해지면 그들이 진심으로 행복했으면 좋겠다는 마음이 들어요. 그래서 자잘하게 챙겨주거나 같이 시간을 보내려 노력하게 됐어요. 어릴 땐 저도 나 하나 챙길 여유도 없는 사람이었는데 지금은 뭐 하나라도 해주고 싶어서 먼저 다가가요. 나이가 들면서 관계 맺음에 대해서도 알아가나 봐요.
 
단편영화 〈어떤 알고리즘〉에 이어 두 번째 퀴어 영화죠. 본격적인 퀴어 로맨스를 해본 건 어떤 경험이었나요?
이 작품을 하는 데 퀴어 영화라는 사실은 제게 중요하지 않았어요. 회사와도 이것이 퀴어 영화라는 데 별다른 논의를 하지 않았을 정도죠. 그걸 배제했다는 이야기가 아니라, 그것이 신경 쓰이지 않을 정도로 자연스러웠다는 이야기예요. 제가 할 수 있을 것 같았고, 할 수 있는 베스트를 했어요.
 
2023년이니까요.
그렇죠!
 
튤 드레스 4백45만원, 브라톱 가격미정, 넥타이 33만원 모두 돌체앤가바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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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 ‘서정인’, 야구 선수 ‘주수인’, 트랜스젠더 ‘마현이’ 등 강단 있는 역할을 자주 맡았어요.
제 본연의 모습에서 어떤 자유로움을 봐주시나 봐요. 제 생각엔 서정인과 주수인과 마현이는 너무 다르고, ‘이건 좀 겹치는데’라고 생각해본 적이 한 번도 없는데 말예요. 이젠 “이주영인 줄 몰랐어, 이주영 배우가 저런 연기를 하는 건 처음 보는 것 같아”라고 해주실 수 있는 역할을 만나보고 싶어요.
 
이주영이 생각하는 이주영은 어떤 사람이에요?
어려운 질문이네요. 초반엔 저를 같이 일하기 어려운 상대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었어요. 하지만 전 자기 고집도 있지만 또 같이 어울릴 수도 있는 사람이라는 걸 보여주고 싶었고, 이젠 제가 바라던 모습대로 된 것 같아요. 그런데 이건 제 사적인 영역에서의 이야기이고, 사실 대중이 날 어떻게 생각할까라는 생각은 잘 안 해요. 그게 맞을 수도 있고 틀릴 수도 있지만 그 자체가 절 얽맬 것 같거든요. ‘내가 이런 모습을 보여주면 사람들이 좋아할 거야’같은 생각을 하고 싶진 않아요. 그냥 저는 오늘은 이랬다가, 내일은 저럴 수도 있는 사람이 되고 싶어요.
 
저는 이주영의 많은 연기를 좋아하지만 영화 〈춘몽〉에서 스쿠터를 타고 다니며 한예리에게 “시예요, 언니가”라고 말하던 이주영이 제일 좋아요. 인물 이름도 ‘주영’이고, 이주영의 자연스러운 멋이 살아 있죠.
와, 〈춘몽〉. 진짜 옛날이죠. 보기 드문 흑백영화였고. 배역 이름이 제 이름이었던 것도 한몫했던 것 같아요. 느껴지는 감정대로, 그냥 나답게 해도 되겠다고 생각했거든요. 장률 감독님 영화가 캐릭터 영화가 아니다 보니 정말 자연스럽게 했어요.
 
레이어드 셔츠 38만원 YC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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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영은 자신이 연기한 인물 중 누가 제일 좋은가요?
이건 별로 생각 안 해봤는데, 바로 말할 수 있어요. 주수인이요. 〈야구소녀〉는 독립영화지만 상업적으로도 관객들에게 다가갈 수 있는 이야기였죠. 팬데믹 때 개봉을 했음에도 잘됐고요. 가장 내세우고 싶은 손가락입니다.(웃음)
 
그럼 아픈 손가락은요?
드라마 〈이태원 클라쓰〉의 마현이. 진짜 고민이 많았죠. 감독님이 절 캐스팅했을 때 “감독님, 정말 괜찮으시겠어요?”라고 여쭤볼 정도였어요. 남성에서 여성이 된 트랜스젠더를 연기해야 한다는 건 어려운 과제였어요. 성전환을 하기 전, 남성의 외형을 하고 있을 때부터 연기를 해야 하는데 ‘여태까지 여자 배우가 남자를 연기한 적이 있었나?’ 하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김성윤 감독님도 저 캐스팅하기 전엔 남자 배우만 계속 만나보셨대요. 그런데 절 만나신 거죠. 일단 인생에서 최저 몸무게로 살을 뺐고, 자연스러워 보이도록 많은 노력을 했어요. 외형적인 부분 외에도 그 캐릭터가 가진 고민과 성장 서사를 표현하는 것도 쉽지 않았지만, 무척이나 좋았어요. 지금 떠올려도 애틋하고 제게도 위안을 주는 캐릭터입니다. 저조차도 안 될 것 같다고 생각했던 캐릭터를 해냈다는 게, 그 도전이 제게는 큰 의미로 남는 캐릭터예요.
 
직접 연출한 단편영화 〈문 앞에 두고 벨 X〉는 부산국제영화제 한국 단편 경쟁에 초청되기도 했죠. 여성 라이더가 겪는 고충을 그려냈어요. 과거에 맥도날드 딜리버리 알바를 했잖아요. 주영 씨는 자기 이야기가 있는 사람이라 좋아요.
전 첫 연출작이 자신의 이야기라는 속설을 ‘왜 그렇지?’라고 생각했는데 저 역시 그렇게 되더라고요.(웃음) 사회의 단면을 보여주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고, 일상적으로 우리 주변에서 있을 수 있는 일을 그려냈어요. 결과물의 완성도보단 그저 20분짜리 내 이야기를 만들었다는 것에 만족해요. 앞으로는 캐릭터를 따라가고 그의 감정을 추측해보게끔 하는, 드라마투르기가 있는 이야기들을 해보고 싶어요. 언젠가 제가 영화 하나에 1년을 쓸 수 있게 되면, 그때는 장편 연출에도 도전해보고 싶어요.
 
트위드 베스트 1백58만원, 베스트 89만8천원, 샤 스커트 1백98만원 모두 로드앤테일러. 슈즈 가격미정 쥬세페 자노티. 보타이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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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아하는 감독이 누구예요?
켄 로치 감독과 다르덴 형제 감독. 일상 속에 시선을 던져 뼈 있는 이야기를 하는 게 좋아요. 전 세계 사람들이 보고 공감할 수 있는 작품을 만드는 감독들이죠. 〈문 앞에 두고 벨 X〉를 만들면서도 그들의 영화를 레퍼런스로 많이 생각했었어요. 발끝만치도 못 따라갔지만요.(웃음)

롤모델이 있나요?
저는 롤모델이 있었던 적이 없어요. 누구처럼 되는 건 불가능하다고 생각해요. 그는 그고, 저는 저니까요. 하지만 좋아하는 배우는 있습니다. 티모시 샬라메 진짜 좋아해요. 작품 속의 그도 좋지만 자유로워 보이는 그의 영혼이 참 좋아요.
 
배우로서 32세, 어떤 나이인가요?
전 10대 때는 사춘기가 없었는데 20대 후반에 사춘기가 왔어요. 그래서 빨리 30대가 되고 싶었죠. 실제로 30대가 되고 저는 훨씬 더 좋아졌어요. 배우는 항상 누군가의 필요에 의해 연기를 하는 사람들이기 때문에, 그 필요에서 내가 제외될 수도 있겠다는 불안감이 항상 있을 수밖에 없는 직업이거든요. 그런데 서른둘인 지금 저는, 저의 서른다섯이, 서른여섯이 좀 더 기대가 돼요. 배두나 언니와 10살 정도 차이 나지만 친구처럼 지내고 있는데, 언니 정말 멋있잖아요. 그렇게 자신의 길을 닦아나가는 선배들을 보며 저도 용기를 얻어요. 
 
스팽글 재킷 1백95만7천원, 티셔츠 31만8천원, 가죽 쇼츠 1백60만원 모두 골든구스. 워커 가격미정 페라가모. 양말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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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영에겐 무엇이 재미있나요?
영화요. 저는 직업이 영화잖아요. 아직 영화를 보는 게 재미있다는 게 참 다행이면서 행복이고, 때론 벅차기도 해요. 영화를 보는 게 그저 일이 되면 진짜 슬플 것 같은데, 아직도 전 영화를 너무 사랑하고, 앞으로도 그럴 것 같다는 확신이 있거든요.
 
이주영은 무엇을 믿나요?
순간의 감정, 순간의 행복. 저는 장기적인 특별한 계획을 세우지 않는 사람이에요. 그냥 오늘 즐거웠으면 됐다, 그렇게 생각해요. 오늘 즐거운 시간을 보냈듯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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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edit

    Feature Director 이예지
    Photographer 윤송이
    Stylist 김효성/정지숙
    Hair 박미형
    Makeup 정보영
    Assistant 박한나
    art designer 진남혁
    Digital designer 김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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