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탠드업 코미디언 최정윤(36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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톱 7만9천원, 팬츠 17만9천원 모두 더오픈프로덕트. 이어 커프 17만5천원, 뱅글 22만8천원 모두 포트레이트 리포트. 선글라스 5만9천9백원 H&M.
아직은 두 직업을 함께 소개하는 게 조심스럽긴 해요. 코미디할 때 섹스 농담을 주로 하다 보니, 학부모님들이 ‘웬 이상한 사람이 우리 애들을 가르치나’ 하고 오해할까 봐서요. 하하. 그래도 생각보다 자녀들의 성교육 필요성을 절감하는 학부모들이 많아졌어요.
풍자적인 섹스 농담을 주로 하는 이유는 뭔가요?
좌중을 설득하려면 관심 있는 분야를 얘기하는 게 좋거든요. 저는 평소 아이들도 가르치고, 성 상담도 하고, 30대 여성으로서 겪는 섹슈얼리티에 대한 소재도 있죠. 누군가에겐 제 섹스 농담이 재미없을 수 있어요. 하지만 평소 자주 접하지 못했던 주제로 여성이, 그것도 무대에서 혼자 얘기하는 걸 듣고 집에 가서 한 번씩 생각해보게 만들 수는 있겠죠. 임신중절처럼 터부시되는 주제를 무대에서 끄집어내려는 이유가 그거예요.
‘임신중절’에 대한 농담이 궁금해지네요.
“스마트폰도 있고 스마트 워치도 있는데 ‘스마트 보지’도 좀 나와줘야 하지 않나”라는 내용이에요. 정자와 난자가 수정하면 푸시 알림으로 ‘수정되었다’라는 메시지가 뜨고, 원한다면 버튼 하나 눌러서 바로 삭제하고. 정자의 동선 공개 기능이 있어 내국인인지, 해외 입국자인지도 알려주고, 성기에 가져다 대면 스캔해서 성병 등의 이상 유무도 알려주고요. 1년 반 동안 우려먹은 조크예요. 하하.
기발한데요? 남자 관객들도 웃나요?
‘여자가 무대에서 보지 이야기를 하네’ 하며 신선하다 생각해서 웃는 사람들도 있고, 여성들이 느끼는 공포심이나 답답함에 공감하며 다소 무겁게 받아들이는 사람들도 있는 것 같아요.
좋아하는 스탠드업 코미디언은 누구예요?
티파니 해디쉬라는 흑인 여성 코미디언이 있는데 청소년기에 가정환경이 불우했던 걸로 알고 있어요. 임시 보호처를 전전하다가 우연히 잘나가는 코미디 클럽이 운영하는 스탠드업 코미디 캠프에서 코미디를 배웠죠. 그런데도 무대에서 보면 에너지 자체가 굉장히 밝아요. 태양이 무대에 떨어진 느낌? 감히 저 사람이 불우한 시절이 있었으리라 상상도 못 할 만큼 거침없고 자유로워요.
정윤 씨 역시 힘든 시기가 있었죠. 아동 성추행 피해자인데, 그 사실을 계속해서 언급하고 드러내려는 시도가 용기 있다고 생각했어요.
얘기할수록 제 안에서 그 사건의 무게가 조금씩 덜어져요. 어릴 땐 성폭력 피해자가 웃기고 밝을 수 있다는 게 상상이 잘 안 됐어요. 언론에서 비쳐지는 이미지는 너무 불쌍하기만 했고, 사회는 피해자를 인생 망친 사람처럼 여기는 분위기가 있었거든요. 회복이 쉽지 않은 건 사실이지만 인생은 계속 이어지잖아요? 성폭행 피해자지만 자기 분야에서 부지런히 목소리 내고 커리어를 쌓는 여성들이 좋은 롤모델이 될 수 있어요.
피해 경험을 코미디로 풀어내기도 하나요?
“모르는 아저씨가 아이스크림 사준대서 따라갔더니 바지를 내리고 성기를 만지고 갔어”라고 얘기하면 아이들이나 관객들이나 분위기가 숙연해져요. 어느 날은 성교육 시간에 한 친구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그런데 바지 안 올려주고 갔어요?”라고 되물었는데 그게 너무 웃긴 거예요. 이 아이가 생각할 땐 함부로 성기를 만진 거나 바지를 안 올려주고 간 거나 비슷한 거죠. 이 일화를 관객들에게 들려주면서 “그렇게 힐링합니다”라고 덧붙이면 굳었던 분위기가 일시에 풀어져요. 제가 필요 이상으로 상처받고 힘들었던 이유는 ‘너는 하자품이야’라는 사회적 시선 때문이었거든요. 그럴 필요 없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어요.
한편 성인 콘텐츠가 왜 ‘성인’ 콘텐츠여야 하는지 의문이에요. 어릴 땐 ‘정자와 난자가 수정하면 임신이 된다’라고만 배우다가, 만 19세가 되면 갑자기 포르노를 볼 수 있게 되죠. 그러다 보니 성인이 돼서도 ‘좋은 성인 콘텐츠’가 무엇인지 잘 판단할 수 없게 돼요.
동의해요. ‘섹스 포지티브’ 교육이 필요하다고 봐요. N번방, 웰컴투비디오 손정우 사건이 하루아침에 생긴 건 아니죠. 섹스는 늘 음침하고, 여성을 착취하고 괴롭히는 것으로 이미지가 굳어지고, 어른들은 아이들에게서 섹스를 빼앗으려고만 해요. 그러면 아이들은 이상한 방향으로 튈 수밖에 없잖아요. “섹스란 충분히 재미있고 즐거울 수 있고, 때로 웃기고 민망할 수도 있는 것이고, 엄청나게 특별하다기보다 살면서 한 번쯤 경험하는 일 중 하나야”라고 말해줘야 해요. 헷갈릴 수도 있고, 의문을 가져도 괜찮고, 청소년기에 섹스에 대한 인식이 혼란스러워도 괜찮다고 말이에요. 또 미래에 섹스를 안전하게 할 수 있는 시기가 왔을 때 ‘어떻게 하고 싶은지’에 대한 청사진이 많이 필요하다고 봐요.
여성들에게도 “섹스를 즐겨, 주도권을 가져도 돼”라는 말이 잘 다가오지 않을 때가 많아요.
일단 충분히 고민하는 시간을 가지는 게 중요해요. 또래 집단의 압박감에 휘둘리지 않았으면 하고요. 섹스에 관심이 없고 두렵다고 해서 ‘시대에 뒤떨어진 인간인가’라고 고민할 필요도 없고, 있는 그대로 인정하되 다양한 가능성에 마음을 열어두면 좋겠죠. 무엇보다 최우선은 안전이고요.
정윤 씨의 스탠드업 코미디 역시 도움이 되겠네요.
코미디라는 게 금기를 건드리는 데서 나오는 어떤 일탈감, 해방감을 느낄 수 있잖아요. 섹스를 소재로 코미디를 할 때 나오는 시너지 효과죠. 코미디를 보러 오는 것뿐 아니라 코미디를 하러 왔으면 좋겠어요. 꼭 끼가 많은 사람이어야만 할 수 있는 것도 아니거든요. 그냥 5분 동안 내가 하는 농담을 귀 기울여 듣는 관객들을 가져보는 경험이 굉장히 중요해요. 특히 여성들한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