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파서 진단 받을 때도 성차별이 존재한다고? || 코스모폴리탄코리아 (COSMOPOLITAN KORE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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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파서 진단 받을 때도 성차별이 존재한다고?

오늘날 많은 여성이 자신의 건강 상태에 대한 제대로 된 진단을 받지 못한 채 집으로 돌아간다. 심지어 이로 인해 처참한 결과를 얻기도 한다. 의료계에서 여성 환자들이 이런 대접을 받는 이유가 무엇인지 살펴봤다.

COSMOPOLITAN BY COSMOPOLITAN 2020.06.09
 
 
캐서린 글래드윈은 진료실에서 의사가 진단을 내리기만 기다렸다. 그녀는 의사의 입에서 무슨 말이 나올지 이미 알고 있었다. 이전에도 같은 말을 수도 없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때마다 그녀는 아무 반박도 하지 못한 채 진료실을 나설 수밖에 없었다. 물론 다른 사람들 같았으면 병원을 떠나는 순간이 좋았겠지만, 그녀는 달랐다. 캐서린은 자신의 몸에 뭔가 심각한 이상이 있다는 생각을 떨쳐낼 수 없었다. 아니, 이상이 있는 게 분명했다. 그녀의 모든 움직임 그리고 신체 곳곳에서 이상한 느낌이 들었다. 그녀는 두려웠다. 아무도 그녀의 말을 믿어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번에는 이대로 진료실을 나가지 않겠다고 결심했다. 의사의 눈길이 손목시계로 향할 때 그녀는 다시 한번 “정상이 아니에요”라고 애원했다. “정말이에요. 뭔가 잘못됐다고요.” 의사는 시계에서 시선을 거두더니 의자에 기댄 몸을 앞으로 끌어당기며 말했다.

 
스트레스를 많이 받아서 그런 건 아닐까요?
 
8개월이 지난 후, 캐서린은 다시 병원을 찾았다. 하지만 이번에는 달랐다. 그녀는 침대에 누운 채 수술실로 실려 갔다. 기계에서 나는 잡음이 그녀의 숨소리를 방해했다. 그녀는 이제 곧 수술을 받는다. 그녀의 머릿속에 있는 종양을 제거하기 위한 첫 번째 수술 말이다. 그렇다. 그 전까지 몇 번이나 병원을 찾았어도 발견하지 못했던 뇌종양을 마침내 치료하게 된 것이다. 캐서린은 네 번이나 의사들을 찾아 다녔지만 모두 괜찮다는 말뿐이었다. 6개월만 늦었다면, 머릿속에서 2년 남짓 자라던 종양은 그녀의 시력을 앗아갔을 것이다. 그러나 의사들은 그녀의 증상을 그저 스트레스 때문이라 주장했다. 누군가는 우울증이라고도 했고, 또 다른 누군가는 조기 폐경이 원인이라고도 했다. 그래서 그녀는 지금까지 항우울제나 공황장애를 치료하는 베타 차단제, 혹은 생리를 시작하게 해줄 약제의 처방만 받고 집으로 돌아와야 했다. 그러는 동안 그녀의 몸은 끊임없이 소리치고 있었다. ‘왜 아무도 내 말을 들어주지 않는 거야?’라고 말이다.
캐서린은 거듭 집으로 돌려보낸 의사들처럼 그녀의 이야기를 불행한 우연이라고 그냥 넘어갈 수도 있다. 그러나 이런 일은 종종 일어난다. 질환을 발견 못 하는 경우도 많고, 오진도 허다하다. 하지만 이 시점에서 우리 모두가 의심해봐야 할 점이 한 가지 있다. 남자가 같은 증상을 보였다면, 그는 더 빨리 진단받을 수 있었을까?
성차별이 우리의 직장 생활과 연봉, 인간관계에 큰 영향을 미치는 것과 마찬가지로, 의료계에서는 우리의 건강에도 영향을 준다는 문제가 제기되고 있다. 미국 심장학회와 국립보건원은 CPR이 필요한 상황에서 여자는 남자보다 사망할 가능성이 더 높다고 발표한 바 있다. 또 2015년 국제 학술지〈플러스 원(PLoS ONE)〉에는 여자는 암 확진을 받기까지 남자보다 시간이 더 오래 걸릴 수 있다는 연구 결과가 게재됐다. 영국 리즈 대학교의 연구 결과에 따르면 영국에서는 지난 10년간 8천 명 이상의 여성이 심장 질환으로 사망했는데, 이는 성 편견으로 인해 오진을 받거나 제대로 된 치료를 받지 못한 것으로 추정된다. 게다가 2015년 뇌종양 자선 단체는 여성이 뇌종양 진단을 늦게 받아 고통을 겪을 가능성이 남성보다 2배나 높다는 보고서를 발표했다. 이러한 성별에 따른 차이는 정확히 어떻게 시작된 걸까? 그리고 진짜 그러한 차별이 존재한다면 이를 멈추기 위해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일까?


✓ 아픈데 남녀가 따로 있을까?
만성통증연구연합의 공동 창립자이자 국장인 크리스틴 비슬리는 “남성은 실제 장기 질환의 가능성을 확인하기 위해 테스트를 받는 반면, 여성들은 바로 심리학자나 정신과에 보내지는 경우가 더 많다”라고 말한다.
 
집단 히스테리
우리가 어쩌다 이 지경에까지 이르게 됐는지를 이해하려면 15~16세기로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길거리에는 하수가 흘러넘쳐 사람들이 전염병에 걸리고, 범죄자들(주로 남자들)은 교수형에 처하던 때로 말이다. 당시 시신은 의사들이 해부 목적으로 수거했고, 이를 통해 인간 해부학의 연구가 시작됐다. 다시 말해 폐기된 남성의 시신을 바탕으로 의약물에 대한 개발이 이뤄진 것이다. 그리고 3세기가 지난 후(당시에도 여자들은 여전히 의사가 될 수 없었다), 불안 증세부터 체액 저류까지 다양하고 광범위한 문제를 겪는 여자들에게는 ‘히스테리’라는 진단명이 거의 독점적으로 주어지다시피 했다.
이는 천식 환자에게 개구리를 삼키라고 처방하는 것처럼 부적절해 보일 수 있지만, 바로 이러한 과거가 오늘날의 의료 시스템을 이룬 것이다. 물론 의사들은 더 이상 우리에게 공식적으로 ‘히스테리’라는 진단을 내릴 수는 없다. 하지만 〈코스모폴리탄〉 독자 가운데 74%는 전문의로 인해 자신이 ‘과민 반응’하는 것처럼 느껴지곤 한다고 답했다. 2015년 예일대 심장학과 연구에서는 많은 여성, 특히 젊은 여성들의 경우 심근경색이 의심되는 상황에서 의사의 진찰을 미루거나 혹은 아예 피한다는 사실을 언급했다. ‘심기증’, 즉 ‘건강염려증’ 환자로 여겨질까 봐 두렵다는 것이 그 이유였다.
의학 연구 측면에서도 살펴보자. 지금도 여전히 의학계에서는 남성의 신체를 기반으로 학습하는 것이 기본이다. 역사적으로 의학적 임상 실험에서 실험 대상은 남자일 가능성이 더 높고, 실험실의 약품 실험에서도 수컷 쥐를 사용하는 경우가 더 흔하다. 영국의 의학 연구 협의회(MRC)는 임상 실험 및 연구 참가자의 성별 혹은 성별 구분과 관련해서는 아직 연구 설계에 대한 가이드라인을 만들지 못했다고 밝혔다. 협회의 대변인은 “이것이 미래의 정책 개발을 위해 자세히 살펴봐야 할 중요한 부분이라는 사실은 인정합니다”라고 말한다.
좀 더 파고들면 더욱 심각한 불균형을 발견할 수 있다. 영국의 모체 사망률에 대한 조사에서 영국 내 흑인 여성들은 백인 여성들에 비해 출산 도중 사망할 가능성이 5배나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그런가 하면 미국 내과학회지에 발표된 한 논문에서는 동성애자, 양성애자 등의 성 소수자들은 또래 이성애자들에 비해 신체적 혹은 정신적 건강 문제로 고통받을 가능성이 훨씬 더 높다고 한다. 그리고 트랜스젠더 공동체에 속한 이들의 건강 문제를 이해하는 데 필요한 데이터양은 터무니없이 부족하다. 우리는 먼 길을 지나 마침내 사회 불평등에 대한 담론을 형성하게 됐지만, 의료계는 여전히 뒤처지고 있다는 것이다.


고통스러운 여자들
베카 파울즈는 책상 앞에 앉아 있는 동안 종종 엎드리곤 한다. 이유 모를 고통이 그녀의 배를 파고들기 때문이다. 그녀는 14살 때부터 생리가 시작되면 침대에 누워 새우처럼 몸을 구부린 채 과다한 생리량과 메스꺼움에 시달리며 며칠씩 집 안에만 머물렀다. 그녀는 12년간 여러 의사를 찾아 다녔지만 대부분 그녀의 증상이 지극히 정상적이라고 말했다. 단순한 생리통이라면서 말이다. 그들은 생리가 멈추는 각종 피임약을 처방했고, 그녀에게 불필요한 상담을 권하곤 했다. “전 이 모든 게 심리적인 문제에서 비롯된 거라고 믿기 시작했죠”라고 그녀는 말했다.
25살이 되자 그녀의 증상은 더욱 악화됐다. 약도 더 이상 듣지 않았고, 심지어 소변을 볼 때도 통증을 느꼈다. 그녀는 다시 여러 차례 의사를 찾아갔지만, 처방받은 거라곤 요로감염증에 대한 항생제였다. 물론 그녀는 그것이 원인이 아닐 거라고 확신했지만 말이다. 결국 그녀는 1년 후 (한 부인과 전문의에게 소개받은 곳에서) 자궁내막증 진단과 함께 그에 대한 수술을 받았다. 하지만 효과는 없었다. 그녀는 여전히 통증에 시달렸다. 그때도 의사는 말했다. 재수술받을 만큼 심각하지 않다고 말이다. 하지만 그녀는 계속 고통을 호소했고, 결국 병원에서는 그녀의 방광에 유착된 자궁내막증을 발견했다. 그녀는 세 차례 수술 후 척추 수술까지 받았다. 소변을 볼 수 있도록 요도에 전기 펄스를 보내는 심박 조율기를 삽입하기 위해서였다. 이제 34살이 된 그녀는 지금도 추가 수술을 앞두고 있다.
사람마다 고통을 느끼는 한계점이 다르기 때문에, 통증 정도를 정확하게 측정하기란 어려울 수도 있다(의사들은 환자들에게 1부터 10까지의 숫자로 고통 정도를 표현하거나 ‘날카로운’, ‘무딘’, ‘아픈’과 같은 단어로 증상을 알려달라고 요청하기도 한다). 하지만 학술지 〈건강과 질병의 사회학〉에서 발표한 연구 결과에 따르면 여자들은 종종 ‘고통을 견디는 타고난 능력’이 있다고 여겨진다. 이는 아마도 여자가 아이를 낳는 생식적인 역할을 하기 때문인 것으로 짐작된다.
이런 잘못된 생각의 문제는 여자들이 받는 치료에도 영향을 준다는 것이다. 〈법학, 의학, 윤리학 학술지〉에 게재된 연구에서는 여자들은 적극적으로 통증 치료를 받을 가능성이 낮으며, 의사들에게 이러한 통증이 ‘감정적인’, ‘심리적인’, 혹은 ‘진짜가 아닌’ 것이라는 소견을 들을 확률이 높다고 주장했다. 또한 고통을 느낄 때 남자들은 진통제를 처방받을 가능성이 높은 반면, 여자들은 많은 경우 진정제나 항우울제가 처방된다는 점도 발견했다. 다시 말해 수세기 동안 여자로 살아간다는 건 본질적으로 아프다는 것을 뜻한다. 생리도 아프고, 섹스도 아프고, 폐경도 아프다. 그리고 그걸 인내할 수 없으면, 그땐 당신의 몸이 아니라 정신에 문제가 있다고 여긴다는 것이다.
 

 
BEHIND STORY 
캐트리오나 가비제너 & 다니엘라 스콧
아무도 우리 이야기를 들어주지 않는 것 같을 때는 어떻게 해야 할까? 이러한 질문에 애시버너 박사는 “다른 의사에게 진단을 받는다고 해서 불쾌하게 생각하지는 않을 거예요. 의사들은 항상 다른 의사에게 의견을 물어봅니다”라고 말한다. “서로 해당 증상이나 문제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다양한 소견을 들어보죠. (그러니) 다른 의사를 찾아가도 괜찮은지를 물어본다고 해서 나쁠 건 없어요. 오히려 또 다른 관점에서 당신의 문제에 접근할지도 모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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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edit

    Write 다니엘라 스콧/캐트리오나 가비제너
    photo by Jobe Lawrenson
    Digital Design 조예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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