까르띠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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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의 꿈과 삶을 공유하는 일은 까르띠에 정체성의 한 부분입니다.” 까르띠에 CEO 시릴 비네론의 말에서도 알 수 있듯 까르띠에와 ‘여성’은 두터운 연결 고리가 있다. 예술가들의 뮤즈이자 파리 사교계의 아이콘, 쟌느 투상을 1920년대 초 메종의 디자인 전문가로 영입한 까르띠에. 1933년엔 크리에이티브 디렉터가 되며, 창립자가 아닌 여성이 기업의 디렉터 자리에 오르기 힘들었던 당시의 사회적 분위기를 극복한 도전적인 존재로 기록된 쟌느 투상. 이 둘의 진보적인 역사와 정신은 까르띠에가 여성 창업가들을 지원하는 국제 사업 계획 공모전, ‘여성 창업 어워드’로 이어진다.
구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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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찌는 자선단체를 능가할 정도의 다양하고 전문적인 활동을 끊임없이 펼치고 있다. 2013년 시작된 여권 향상 캠페인 〈차임 포 체인지(Chime for Change)〉를 통해 양성평등 실현에 힘쓰고 있으며, 사회 변화를 이끌어내기 위한 균형 발전 프로젝트인 이퀼리브리엄도 함께 진행하고 있다. 기초적인 물질적·금전적 지원부터 각 지역의 특색을 고려한 사회 프로젝트 그리고 공공 미술, 아동 조혼 반대 영화 제작, 잡지 창간 등의 폭넓은 문화적 활동까지 적극적으로 병행하고 있다. 간부급 여성의 비율을 59% 이상으로 높인 적극적인 행보도 인상적. 이 밖에도 여러 나라의 여성운동가와 여성 지도자를 육성·지원하고, 유색인종 여성을 후원하며 사회 취약층 여성들의 자립을 돕는 등의 수많은 노력이 지금 이 순간에도 유럽을 넘어 아메리카, 아프리카, 인도, 중동 등 세계 각지에서 행해지고 있다.
토리버치 & 캐롤리나 헤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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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리 버치는 자신의 자선단체를 통해 창업비와 초기 자본금을 낮은 금리로 대출해주고, 사업과 관련된 교육 프로그램을 지원하는 등 여성 사업가들을 다각도로 돕고 있다. 또한 강연을 통해 전세계 여성들에게 영감을 주고 있다. 캐롤리나 헤레라는 자사 향수의 앰배서더 칼리 클로스가 운영하는 자선 교육 단체 ‘코드 위드 클로시(Kode with Klossy)’와 협력해, 여학생들이 컴퓨터 코드를 배워 (현재 여성 비율이 현저히 낮은) 컴퓨터 기술 분야의 리더로 성장할 수 있도록 격려하고 있다. 이 두 디자이너에겐 공통점이 있는데, 전업주부로 살다 뒤늦게 재능을 발견해 브랜드를 론칭했고, 결국 미국을 대표하는 여성 사업가가 됐다는 점이다. 이것만으로도 수많은 여성들에게 희망을 불어넣기에 충분하다.
디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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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올 하우스 최초의 여성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라는 영광스러운 타이틀을 거머쥔 마리아 그라치아 치우리는 지속적으로 여권과 우먼 파워를 이야기하는 페미니스트 디자이너다. 왼쪽 사진의 주디 시카고가 입고 있는 티셔츠에 프린트된 ‘We Should All Be Feminists’, 쇼장 정면에 거대하게 쓰인 ‘I Am a Woman’과 같이 과감하고 직설적으로 자신의 생각을 설파하고 있다. 지난달 공개된 2020 S/S 오트 쿠튀르 역시 마찬가지. 쇼장 정면엔 ‘What If Women Ruled the World?’가 수놓인 거대한 패브릭이 걸려 있었다. 이 문구는 미국을 대표하는 페미니스트 아티스트 주디 시카고가 세상에 던진 질문이다. 치우리는 이 문구에서 영감을 얻어, 주디 시카고가 주목해온 신성한 여성성을 지닌 그리스 여신들이 입었을 우아한 튜닉 드레스로 컬렉션을 채웠다. 쇼와 더불어 주디 시카고의 ‘출산’을 테마로 한 설치 작품, ‘The Female Devine’을 파리 로댕 박물관 정원에 전시해 감동을 더했다. 로댕의 연인이자 예술적 협력자였으나 그의 그늘에 가려 어둠 속에서 죽어간 천재 여성 조각가 카미유 클로델이 미소를 지을 만한 위대한 순간이지 않은가?
막스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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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스마라는 과거 우아한 여성의 이미지를 강조했지만, 최근의 컬렉션에선 파워풀하고 자주적인 여성상을 강조하고 있다. 이번 2020 S/S 시즌 또한 흔치 않은 여성 스파이 캐릭터가 등장하는 여러 작품에서 아이디어를 얻었다. 그중 가장 큰 모티브가 된 드라마 〈킬링 이브〉는 범죄심리학을 전공한 정보국 요원과 여성 킬러의 대결 그리고 뜻밖의 교감을 담은 페미니즘 드라마로 큰 화제를 모았다. 명민하고 정교한 책략으로 적들을 제압하는 여성 스파이들이 막스마라의 런웨이에 올라 브랜드의 달라진 여성상을 증명하고 있다.
프라다 & 미우미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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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8년, 이브 생로랑의 스커트를 입고 여성해방과 공산주의를 외치는 거리 시위에 참여한 미우치아 프라다. 이 시위 장면이 신문을 통해 이탈리아 전역에 알려지고, 페미니스트 공산당원이 값비싼 스커트를 입었다는 이유로 대중과 언론의 비판을 받게 된다. 호사스러운 스커트를 입으면 페미니스트나 공산주의자가 될 수 없는 것일까? 미우치아는 어린 시절부터 바지보다는 스커트를 즐겨 입었다. “스커트는 여성을 자유롭게 하는 수단이자, 감정을 표현하는 매개체예요.” 그녀에게 스커트는 여성의 몸을 해방시키는 자유의 상징인 것이다. 미우치아의 페미니즘은 남성성을 취해 남성과 동등해지고자 했던 과거의 보편적인 생각과는 달랐다. 여성의 아름다움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는, 그 자체를 찬양하는 페미니즘! 그녀의 이런 철학은 컬렉션에도 늘 녹아 있다. 미우치아는 언제나 자연스러운 방식으로 여성의 본질을 보여준다. 이것은 미우미우가 매 시즌, 여성 감독들과 선보이는 단편영화 〈미우미우 우먼스 테일〉 시리즈에서도 여실히 드러난다. 19번째 시즌을 맞이한 우먼스 테일은 현대사회를 살아가는 여성들의 모습을 담백하고 자연스럽게 담아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