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랙킹 아장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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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랙킹 아장맨
어느 정도 예상은 해서 괜찮았어요. 하하.
남성을 연기하는 ‘드랙킹’ 퍼포먼스에서 유두 노출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이유가 뭔가요?
2017년 초에 영국에서 유학하다가 한국으로 돌아왔는데 성차별과 혐오 표현이 왜 문제인지도 모르는 사람들 사이에서 내던져진 기분이 들었어요. 미술사를 전공했기 때문에 한국에서 큐레이터가 되고 싶었는데, 친한 큐레이터 언니에게 미술계 내 성차별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포기했죠. 우울증이 심하게 왔어요. 그 스트레스를 어떻게 풀었냐면, 클럽에 가서 폭음하고 취하면 상의를 벗어 던지곤 했어요. 그랬더니 여자 친구가 이왕 보여주려면 무대 위에서 안전하게 하는 게 낫지 않겠냐고 하더라고요. 벌레스크처럼 여성이 대상화되는 무대는 싫고 다른 게 뭐가 있을까 하다가 드랙 퍼포머들을 찾는 이벤트를 발견한 거예요. 내 몸은 그대로인데 남성을 연기할 때는 남성이기 때문에 유두가 노출돼도 용인되고, 굉장히 다양한 액팅이 허용된다는 점에 끌린 거죠. 저는 제 드랙을 여성 유두 해방 운동의 지지 표현이라고 생각해요.
결국 남성만이 유두를 드러낼 수 있다는 사실을 강조하는 셈이라며 비판하는 사람들도 있죠.
관점을 바꿔 왜 제가 무대에서만 그렇게 할 수 있는지, 그 맥락을 알면 이미 답은 나와 있다고 생각해요. 만약 평소에 제가 무대에서 하듯 상의를 탈의하고 다닌다면 사회에서 매장당하겠죠?
노출을 처음 시작할 때 부담스럽진 않았어요?
시작이 어렵죠. 하하. 주변 사람들도 처음엔 어색해하다가 조금 생각해보니 사실 자기들도 아무렇지 않은 거예요. 여태껏 학습한대로 ‘저건 이상하게 느껴져야 한다’라고 생각하던 것뿐이죠. 사람들이 가끔 왜 이렇게 가슴에 집착하냐고 해요. 관심받으려 그러는 거 아니냐고요. 그런데 저는 아직도 충분하지 않다고 생각해요. 고 설리 씨가 그렇게 심하게 논란거리로 소비됐던 것 역시 브라를 하지 않아 그랬던 거잖아요. 한국 사회에서는 여성이 유두를 드러내기 시작하면 그 여성의 다른 자질은 중요하지 않은 것처럼 여겨져요. 저 여성이 ‘걸레’인지 ‘페미’인지 걸러내려고 혈안이 되죠.
작년 여성운동에서 가장 큰 화두 중 하나가 ‘노브라’였어요. 탈코르셋 운동이 가속화하고 있죠.
제가 외모 코르셋이 상당히 심했거든요. 영국에 있을 때 어느 날은 내가 못생겨 보이는 것 같아 학교에 안 간 날도 있어요. 그 비싼 학비와 엄청난 배움의 기회를 두고 말예요. 집에 먹을 게 없어 잠시 슈퍼 나갈 때도 화장 없인 힘들고, 매일 거울을 보며 성형을 생각했죠. 그런데 지금 여자 친구를 만나면서 탈코르셋이라는 개념을 접했고, 외모는 물론이고 늙어가는 것에 있어서도 많이 여유로워졌어요.
드랙퀸은 “코르셋을 주워 입는다”라고 비난받죠.
남성에게도 꾸밈에 대한 욕구가 있다는 걸 보여주는 것 자체가 의미 있다고 봐요. 마치 여성들이 오랫동안 사회 진출의 욕구가 없는 것처럼 여겨졌듯, 남성의 꾸밈 노동에 대한 욕망을 노출시키는 게 필요한 거죠. 그런 행위를 계속하다 보면 성별에 따라 성 역할을 이분법으로 나누는 일이 줄어들 것 아니에요?
오늘 의상 콘셉트에서는 전통적인 남성상이 드러나진 않아요.
제가 연기하는 남성성은 미디어에 노출되는 남성 캐릭터부터 주변에서 보는 남성 인물, 제 안의 남성적인 자아까지 다양해요. 남성적인 것이 꼭 성별이 남성인 사람의 전유물은 아니잖아요. 퀴어 남성이 가진 남성성은 0에 수렴할 수도 있고요. 전형적인 남성이 되기보다는 특이한 느낌을 주려고 하죠.

드랙킹 아장맨
‘광기’요. 딱 봤을 때 ‘피하고 싶다’는 느낌을 주는 캐릭터가 되고 싶어요. 제가 드랙을 하는 이유 중 하나가 남성성을 연기하고 때로 조롱하면서 남성에 대한 공포심을 극복하고자 하는 거거든요. 생각해보면 가장 먼저 공포를 불러일으키는 심리는 ‘저 사람 이상해 보인다’는 거예요. 최근에 미술관에서 큐레이터로 일하는 친구가 저를 작가로 섭외하자고 관장님께 무대 영상을 보여드린 적이 있대요. 그런데 관장님이 “저 사람 무슨 일을 벌일지 모르니까 부르지 말자”라고 했다는 거예요. 하하. 저는 무대라는 잘 짜인 공간에서 바닥을 기면서 옷을 벗고 있었을 뿐인데 말이죠. 그때 확실히 알았어요. 사람들은 일상적이지 않은 것에 공포를 느낀다는 걸.
드랙퀸이 “여혐이다”라고 공격받는 것처럼, “남혐이다”라는 비난을 받진 않나요?
한 번도 그런 말을 들은 적 없어요. 일단 제가 가슴을 내놓고 있으니까 대부분의 남성이 저에게 말 걸기를 굉장히 부담스러워해요. 두 마디 이상 하신 분이 손에 꼽힐 정도예요. 저를 ‘미친 년’이라고 생각하시겠죠. 하하.
드랙이 본인에게 미치는 영향은 뭔가요?
남성에 대한 공포 극복 그리고 치유요. 얼마 전 친구 전시회에서 남성 큐레이터를 패러디하는 퍼포먼스를 했어요. 예쁜 여성들에게만 명함을 주면서 작품을 설명해주는 역할이었죠. 그런데 다른 친구들이 그러더라고요. 네가 이 신에 있는 사람이었으면 눈치 보여 그런 퍼포먼스는 못 했을 거라고요. 저는 항상 미술 하는 남자들을 비판하고 패러디하고 싶었는데 만약 진짜 미술을 했었다면 그게 불가능했을 거라고 하니 지금 제가 하는 일이 제가 갈 길인 것처럼 느껴졌죠. 하고 싶은 거 다 하면서 페미니스트로 살 수 있잖아요.
사실 많은 사람이 드랙킹의 존재 자체도 몰라요.
2000년대 초반에도 몇몇 드랙킹들이 있었어요. 남은 자료가 거의 없고 30분짜리 영상이 하나 있는데 퍼포머들이 게이도 됐다가 헤테로도 됐다가 레즈비언도 됐다가 하는 식이에요. 폭이 넓죠. 그런데 다들 어느 순간 증발해버렸어요. 그 당시만 해도 사회가 지금보더 훨씬 더 보수적이었죠. 아우팅될까 봐 쉬쉬하는 분위기가 있어요.
사람들이 아장맨의 드랙킹 공연에서 어떤 점을 봐줬으면 하나요?
멋있다면 왜 멋있는지, 징그럽다면 왜 그렇게 느끼는지 생각해봤으면 해요. 제가 만약 여성이라는 자아를 내세워 같은 행위를 했을 때도 똑같은 감정을 느낄지, 그렇지 않다면 그 차이가 무엇인지요.
아마 괴기스럽다고 비난하는 사람들도 있을 테죠.
얼마 전 일간지 인터뷰를 했는데 온라인 기사에 “얌전하게 생겼네…. 그냥 얌전하게 살아”라는 댓글이 달렸더라고요. 기분 나쁘지도 않아요. 그런 사람들이 있으니까 제가 이걸 계속할 수 있는 거죠.
페미니즘을 얘기할 때도 “괜히 피곤하게 살지 마”라고 얘기하는 사람이 꽤 많아요.
그렇게 말하는 사람들도 결국엔 가부장제에 타협하는 게 행복하고 편안하게 사는 길이라 생각하는 거잖아요. 그런데 그게 사실은 행복한 게 아닐 수도 있다는 걸 사회가 많이 보여줘야 해요. 사람들이 가장 많이 소비하는 드라마만 봐도 대부분의 경우 여성은 가부장제에 편입돼 행복한 결말을 맞죠. 이혼하면 다른 남자가 생기고, ‘진정한 사랑’을 찾아 결혼하잖아요. 하지만 〈82년생 김지영〉의 김지영이 말하는 건 다른 거죠. 가부장제가 사람을 미치게 만들 수 있다는 것. 가부장제에서 벗어나서도 행복하게 사는 사람들에 관한 이야기를 더 많이 헤야 한다고 생각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