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19년, 〈82년생 김지영〉에서 주연을 맡은 배우 정유미는 수없이 많은 악플을 받아야 했다. 책 사진을 찍어 올린 서지혜도 마찬가지였다. 그럼에도 많은 여성이 책 표지 혹은 영화 포스터를 개인 SNS 계정에 올리며 공감과 지지의 댓글을 남겼고 스스로 페미니스트라 생각한다. 코스모가 진행한 서베이에서는 절반이 훌쩍 넘는 57.6%가 평소 스스로를 페미니스트라 말한다고 답했다. 여성학 연구자이자 〈다시는 그전으로 돌아가지 않을 것이다〉의 저자 권김현영은 “50%가 넘는 수치는 상당히 고무적인 거예요. 20년 전만 해도 스스로 페미니스트라 말하는 사람은 10%도 채 안 됐거든요”라고 반색했다. ‘페미니즘’이라는 말에 피로나 거부감을 느끼냐는 물음에 ‘그렇다’고 답한 비율은 4분의 1이 채 되지 않았다.
그렇다면 페미니즘에 여전히 거리를 두고 싶어 하는 이들의 입장은 무엇일까? “저는 페미니즘보다 남녀평등이 더 맞는 말이라고 생각해요. 여성이라서 차별받았다는 주장의 맥락을 이해하기 힘들어요. 삶이 너무 피곤하지 않아요?”라고 회사원 손미나(가명, 27세) 씨는 말한다. 실제로 스스로 페미니스트라 하지 않는다고 답한 사람 중 절반에 가까운 사람들이 페미니즘보다 남녀평등이 더 맞는 말이라 생각했다. ‘페미니즘’이란 단어에 피로를 느낀다고 응답한 사람들 가운데 절반에 가까운 이들은 현재 한국 사회에서의 페미니즘이 너무 과격하다고 생각하며, 셋 중 하나는 페미니즘이 남혐이라고 생각한다. 권김현영은 “언제나 모든 사회운동은 가장 극단적인 모습으로 규정되곤 했어요. 노동운동과 장애인권 운동도 그랬죠. 자극적인 일 위주로 보도하는 미디어의 문제가 크다고 봅니다”라고 말한다. 사람들은 워마드 같은 단체를 ‘래디컬 페미니즘’이라 오해하기도 한다.
생물학적으로 타고난 여성의 인권만을 우선하는 일부의 주장이 ‘급진’과 ‘과격’의 상징처럼 여겨지는 것이다. 최근 숙명여대에 합격한 트랜스젠더 여성이 일부 학생들의 반발과 협박으로 입학을 포기했던 사건도 페미니즘에 대한 부정적인 편견을 가중시켰다. 실제 ‘페미니즘’에 대한 이미지를 묻는 질문에는“한국에서의 페미니즘은 변질됐다” 등의 답변이 눈에 띄었고, 스스로를 증명해야 한다는 피로감으로 페미니즘에 관한 얘기를 꺼내지 않는다는 응답도 있었다. 권김현영은 워마드에 대해선 “이 단체가 아직까지 작동하고 있다는 사실은, 그동안 한국 사회의 여성 혐오가 얼마나 지독했는지를 보여주는 사회적 증상이에요. 그동안 여성의 분노에 아무도 동의해주지 않은 것에 대한 분노를 무분별하게 표출하는 것이죠”라고 분석했다. 그에 따르면 래디컬 페미니즘은 “가장 사적인 것이 가장 정치적인 것”이라는 구호로 요약되며, 개인의 사생활로 여겨 건드리지 않았던 성과 사랑과 가정의 문제가 핵심이 된다. 성폭력과 가정 폭력 및 데이트 폭력의 해결, 탈코르셋 운동 등이 대표적인 예다. 일상에서의 차별을 다룬 〈82년생 김지영〉이 많은 사람의 공감을 얻은 것도 같은 맥락이다. 설문에서는 ‘페미니즘’의 의미가 무엇이라 생각하냐는 질문에 “여성이라서 겪는 차별과 폭력을 없애려 노력하는 것”이라는 답변이 가장 많았던 것에 비해 “남성이 가진 특권을 성찰하는 것”이라는 답변이 가장 적었다. 그러나 권김현영은 이 두 가지가 결국 같은 얘기라고 설명한다. “래디컬 페미니즘은 남녀가 같아지겠다는 것이 아니라 지금 사회는 가부장제를 중심으로 돌아간다는 것을 이해하고 그 권력 구조가 작동하지 못하도록 막는 것”이라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