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톡, 즉 그룹 채팅방에서 벗어나고자 하면 당신의 모바일은 그 선택이 옳은 결정인지 여러 차례에 걸쳐 스스로를 심문한다. 마치 영화에서 여러 개의 버튼을 차례차례 눌러야 폭탄이 발사되는 것처럼 말이다. 어느 토요일 밤, 나는 와인에 취한 상태로 한동안 잊고 있었던 휴대폰 화면을 들여다봤다. 단톡에 읽지 않은 메시지 50개가 나의 확인을 기다리고 있었다. 일 년 넘게 단톡을 나갈까 고민하던 차, 결국 스크린 타임을 줄이겠다는 결심으로 마침내 실행에 옮겼다. 그렇게 희열과 자유로움을 느끼며 나는 모든 단체 채팅방을 떠났다.
불안함의 시작
내가 단톡방을 떠나고 싶었던 한 가지 큰 이유가 있다. 단톡창에 뜨는 빨간색 알림 표시의 수와 내 초과 근무시간이 비례한다는 것이었다. 게다가 한 번 들어갈 때마다 잇따라오는 답변을 보는 건 불필요한 스트레스를 더하는 일이었다. 단톡이 잠잠할 때조차도 혹시나 나 없이 빠르게 올라가는 말풍선이 쌓이고 있는 건 아닌지 초조해지곤 했다. <우리가 사회적으로 어색함을 느끼는 과학적 이유>의 저자인 타이 타시로 박사에 따르면 이는 나 혼자만이 느끼는 감정은 아니라고 한다. “우리가 휴대폰과 멀리 떨어져 있으면 메시지에 즉시 답장하지 못한다는 죄책감이 큰 불안감을 낳는다는 연구 결과도 있습니다”라고 그는 말한다. 또 나는 단체 카톡방 때문에 친구들에게 소홀해지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이제 1:1로 톡을 하는 일이 드물다. 흥미로운 뉴스를 접하면 시간 절약을 위해 단톡에 이를 전한다. 지루하거나 같이 놀 사람이 필요하면 특정한 누구를 지목하는 일 없이 단톡에다 “모두들 뭐 해?”라고 한마디 남기면 된다. 어찌 보면 전 남친이 보내는 “자니?”란 메시지와 별반 다를 게 없었던 것이다. 게다가 이따금 대화창에 올라온 다른 사람의 말에 답변을 하는 건 ‘좋은 친구’ 역할을 자처하는 기분마저 들었다.
모든 단톡에서 해방된 나는 단톡방을 떠나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를 곧 절실하게 깨달았다. 알림에 대한 스트레스가 사라진 대신 나는 새로운 불안감을 얻게 됐다. ‘단톡에서 퇴장한 것 때문에 내가 친구들에게 관심 없는 것처럼 비치면 어쩌지?’ 단톡을 나오고 며칠 후, 그 대화방에 속한 친구 중 한 명이 나에게 말했다. 내가 방을 나가자 다른 친구들이 이에 대한 대화를 나눴다고 말이다. 나의 불안감은 더욱 치솟았다. 나는 그녀에게 말했다. “그거 참 이상하네. 왜냐하면 나한테 직접 물어본 사람은 아무도 없거든.” 나는 바보가 된 것 같았다. 동시에 남의 눈치를 보기 시작했다. 마치 사람들과 함께 있다가 홀로 밖으로 나오면 그 자리에 남은 이들이 분명 당신에 대해 이야기할 거라고 확신하듯이 말이다. 앞으로 친구들이 놀러 갈 계획을 세울 때마다 나를 쉽게 제외할 거란 생각이 들자 현타와 더불어 친구들 사이에서 도태될 것 같은 불안감까지 들었다. 나에게 무슨 짓을 한 거지?
사라진 후 잊힌 그녀
단톡을 벗어난 지 일주일도 되지 않아 긴 주말이 찾아왔고 나는 더 깊은 패닉에 빠져들었다. 일요일 밤, 나는 주말에 고작 2명의 친구만 만났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나 빼고 모든 사람이 함께 놀고 있을 거라는 생각에 머릿속으로 분위기 좋은 모임 현장을 상상하기까지 했다. 한편으론 소외감을 느낄 뻔했다. 나는 누군가를 붙잡고 단톡에 다시 초대해달라고 빌지 않도록 마음을 다잡아야 했다. 2주가 지난 후 나는 내가 저지른 멍청한 짓이 친구들과의 우정까지 망칠까 봐 진심으로 걱정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와 동시에 단톡이 우리 사이를 연결해주는 유일한 끈이었다면 애초에 그렇게 깊은 관계도 아니었을 거라는 생각도 들었다. 내가 떠났던 단톡방에서 유일하게 한 친구만이 나에게 다시 돌아오라며 말을 걸었고, 이를 통해 깨달았다. 나 없이도 세상은 정말 잘 굴러간다는 사실을 말이다.
그럴 가치가 없었다?
자진해 외톨이가 되고, 모두를 왕따시킨 지 3주가 지난 토요일 아침, 나는 큰 충격과 동시에 약간의 스릴감을 맛봤다. 아니 안도감이라고 해야 할까? 미처 퇴장하지 못한 한 단톡방에서 메시지가 온 것이다. 중요한 내용도 아니었다. 그저 한 친구가 자신이 인터넷에서 본 재미있는 사진을 공유한 것이었다. 다른 친구들은 줄줄이 “세상에”, “뭐야 이게”라며 답장을 보냈다. 나는 ‘여기서 대화를 나누면 내 실험이 헛수고로 돌아가려나?’라는 생각에 퇴장을 할까 고민했지만 곧 “ㅋㅋㅋ”라며 아무런 의미 없는 대답을 남겼다. 그러자 다시 나에게 친구가 생긴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그렇게 주고받은 대화를 통해 나는 깨달았다. 내가 은연중에 단톡방을 좋아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말이다. 그렇다면 문제는 뭘까? 나를 짜증나게 하는 건 바로 그 통제할 수 없는, 끊임없이 울리는 알림이었다. ‘방해 금지 모드’가 존재하는 데엔 다 이유가 있다. 나는 이제 이 모드를 주기적으로 사용한다. 결국 바보 같은 사진 하나 덕분에 나는 다시 단톡방 있는 삶을 선택했고, 단톡방을 퇴장하면서 느낀 불안감도 말끔히 사라졌다. 다시 단톡방에 입장할 땐 휴대폰도 내 결정에 대해 여러 번 질문하지 않았다. 이렇게 나는 세상과의 소통을 다시 시작했다.